국내정치

한국 사회의 반중정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역사적 기원과 정치적 배경 분석

세시정 2025.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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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중국을 싫어하게 되었을까요? 단순히 최근 뉴스에서 보이는 갈등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감정은 훨씬 더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한국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은 반중정서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형성되었는지를 과거에서 현재까지 체계적으로 살펴봅니다.

📌[목차]

  1. 반중정서의 출현, 단순 감정인가?
    1-1. 혐오를 이끄는 구조: 파시즘의 논리
    1-2. 한국 사회에 스며든 반공주의의 흔적
  2. 역사 속 혐중 감정의 씨앗
    2-1. 일제강점기 조작된 분열과 조선일보의 역할
    2-2. 만보산 사건과 허위보도의 위력
    2-3. 문학과 대중문화 속 반중정서
  3. 현대 정치와 반중 담론의 재생산
    3-1.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반공·반중 이데올로기
    3-2. 윤석열 정부와 한일군사동맹의 배경
  4. 화교의 역사와 침묵된 아픔
    4-1. 자유중국 의용군과 그들의 희생
    4-2. 1992년 수교 이후의 외면
  5. 반중정서의 본질과 현대적 함의
    5-1. 감정의 도구화, 그리고 파시즘의 귀환
    5-2. 이성적 사고를 위한 제언

1. 반중정서의 출현, 단순 감정인가?

1-1. 혐오를 이끄는 구조: 파시즘의 논리

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파시즘은 단지 이념이 아니라, 사회적 불안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파시즘은 민족적 일체성을 강조하며, ‘공통의 적’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타자’, 즉 외부인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전략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한국 사회 또한 이러한 파시즘적 경향을 흡수한 역사가 있습니다.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공산주의=적=중국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되면서 감정적 반감은 자연스럽게 반중정서로 이어졌습니다.

1-2. 한국 사회에 스며든 반공주의의 흔적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강화된 반공주의는 냉전 이데올로기의 일부였으며, 이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 일상적 문화와 교육에도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중국은 ‘공산주의의 본산’으로 간주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반중정서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해줍니다.

2. 역사 속 혐중 감정의 씨앗

2-1. 일제강점기 조작된 분열과 조선일보의 역할

1931년 만보산 사건은 한국과 중국 간의 민감한 감정을 촉발시키는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중국 경찰이 한국인을 총으로 사살했다"는 가짜 뉴스를 보도하면서 분노를 촉발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평양, 서울, 대구 등지에서 화교에 대한 폭동이 발생하였고, 약 200여 명의 중국인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반중 감정은 한국 내 친일 협력체제 강화에 유리한 여론 조성 도구로 쓰였던 것입니다.

2-2. 만보산 사건과 허위보도의 위력

만보산 사건은 단순한 지역 간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언론이 어떻게 혐오를 증폭시키고, 정치적 목적으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였습니다.

2-3. 문학과 대중문화 속 반중정서

일제강점기 문학 작품 붉은 산은 중국인 지주에게 박해받는 한국인을 묘사하며, 일본 군이 한국인을 구해주는 구원자로 그려졌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대중에게 "중국인은 적, 일본은 아군"이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소설이 아니라, 의도된 이데올로기 도구였던 셈입니다.

3. 현대 정치와 반중 담론의 재생산

3-1.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반공·반중 이데올로기

한국전쟁 시기, 중국군의 참전은 한국 내 반중 감정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모택동의 아들이 전사한 전투는 아직도 정치적으로 회자되며, 이후 한국의 군사정권은 이를 반중정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습니다.

3-2. 윤석열 정부와 한일군사동맹의 배경

최근 들어 반중정서는 더욱 명백히 정치적 목적을 띄고 활용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의 반중정서 조장한일 군사동맹 강화를 위한 여론조작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2030 세대</strong를 중심으로 혐중 감정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적대적 정서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4. 화교의 역사와 침묵된 아픔

4-1. 자유중국 의용군과 그들의 희생

한국 화교들은 6.25 전쟁 중 자유중국을 지지하며 의용군을 조직했습니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보상도, 인정도 아닌 외면이었습니다.

4-2. 1992년 수교 이후의 외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화교들은 오히려 소외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선택했던 자유중국은 외면받고, 역사적 희생은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조직적 반중정서 형성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또 다른 비극입니다.

5. 반중정서의 본질과 현대적 함의

5-1. 감정의 도구화, 그리고 파시즘의 귀환

오늘날의 반중정서는 실재하는 위협보다 조작된 위기감정치적 동기에 기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파시즘이 혐오를 도구화하여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적을 만들고, 그 적을 증오하게 함으로써 사회 통제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5-2. 이성적 사고를 위한 제언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혐오의 감정을 제어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합의해왔습니다. 한국 사회 역시 이제는 반중정서를 넘어 사실에 기반한 역사 인식이성적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혐오의 감정은 일시적인 통쾌함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결국 우리 사회 스스로를 병들게 할 뿐입니다.


결론: 반중정서는 단지 국민 정서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닙니다. 이는 역사적 사건, 정치적 목적, 언론의 조작이 결합된 복합적 산물입니다. 이제는 그 감정의 본질을 직시하고, 과거의 상처를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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